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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세시대 개혁운동을 한 왈도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전도사)
이름
  윤사무엘  (Homepage) 작성일 : 2013-06-18 23:21:39  조회 : 4697 

왈도파의 주장
David W. Cloud "Rome and the Bible"

왈도파(Waldensians, Waldensian sect (이 용어는 “계곡의 사람들”을 뜻한다) 운동이란 중세시대의 남 유럽에서 일어난 기독교 영적 운동이다. 이 운동은 1173년 피터 왈도(Peter Woldo, Waldo, Vales Waldes, Pierre Vaudès or de Vaux, c. 1140~c. 1218) 혹은 발도에 의해 세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자료에는 왈도보다 더 일찍이 9세기에 이미 활동했다고 말한다. 다른 자료들은 콘스탄틴 대제의 회심을 추종하는 권력과 명성을 거절하면서 초대교회의 시절로 돌아가는 운동으로 보고 있다. 아무튼 중세시대에 있었던 개혁 운동을 지칭한다.

왈도파는 재산 팔아 구제, 전도에 힘썼고, 기독교 문서를 번역하여 캐톨릭으로부터 이단으로 몰려 파문 당했다.
가르침을 요약하면,
(1)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이다
(2) 산상수훈 지키기로 힘씀, 평화주의자
(3) 연옥설, 마리아 숭배, 죽은 자 위한 기도, 예전을 거절함. (왈도는 이노센트 3세에게 끌려 죽음, 순교당함)
왈도파는 오직 성경의 가르침을 추구했고 의도적인 가난을 구했다. 그들은 속죄부, 죽은 자에 대한 미사, 성자들의 중보 그리고 마리아 숭배 교리를 거절했다. 그들은 극도의 가정 행복과 믿음 이외에 대부분이 평화주의자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기술적인 직업을 좋아했고 도덕적 손해를 보는 사업을 피했다. 왈도파는 캐톨릭으로부터 12-13세기를 통한 긴 박해를 견디었다. 그들은 산 속에서 운둔생활을 했다. 유럽 밖에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기가 어려웠다. 1541년 후기, 프랑스의 22개 마을이 대량학살을 당했다. 1655년에 이태리의 피드몬트 계곡의 정착지가 공격 받아 살해를 당했다.

왈도파는 유럽 전역에 걸쳐 흩어져 있던 집단 거주지에 살았으나, 주 거주지는 프랑스와 북부 이탈리아 산지(山地)였다. 왈도파는 16세기 유럽교회 개혁 전 적어도 5 세기 동안, 유럽을 지배한 배교의 한 가운데서 성경적 증거를 유지했다. 그들은 로마캐톨릭 당국에 의해 가혹한 박해를 받았으며, 결국 17 세기 후반에 거의 멸망하였다. 왈도파의 이야기는 역사에서 가장 매혹적인 사화(史話)의 하나를 이룬다. 이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의 역사는 16세기 개혁 전과 개혁 후라는 두 개의 분명히 다른 범주로 나뉠 수 있다. 이 모든 순교자들을 통해 왈도 교회는 본래 이태리에만 남았다. 1893년의 이민자들은 북 케롤라이나에 왈도파를 세웠다. 2차 대전 때 그들은 나찌를 피한 많은 유대인들을 도왔다. 왈도 교회는 오늘날도 여전히 남아있는데 남미, 이태리, 독일, 그리고 미국에서 장로교파로 대부분이 흡수되었다

교황 인노센트 3세와 다른 많은 교황들 아래에서 잔인하게 고통을 당한 왈도파는 항상 성경을 사랑했던 사람들로 평을 받았다. “왈도파는 성경과 신앙 서적으로 사람들을 회심시켰다. 그들은 행상인으로 시골집이나 귀족의 성을 방문해서는 직물이나 보석을 팔려고 내놓았다. 그리고 다른 것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했다. ‘예, 아주 진귀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보석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불붙이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이들 행상인들은 보배로운 두루마리 성경을 꺼내어 놓았다.”(아미티즈(Armitage), “침례교도 역사” I. p. 301)

올리베탄 성경(Olivetan French Bible) 서문에서 번역자들은 말하기를 “왈도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부요하게 된 초대교회 이후로 항상 성경 안에 담겨진 하늘에 속한 진리를 충만히 누렸다.” (사무엘 몰란드, History of the Evangelical Churches, 1655, p.14) 17세기에 자행된 이루 말할 수 없는 잔혹한 박해 동안 살았던 왈도파의 목양자 Leger은 그의 저서 ‘삐에몽 골짜기의 복음적인 교회들의 역사’(1669)에서 ‘로마 카톨릭의 고대 성경 사본은 위조로 가득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개혁시대에 수용 원문(Received Text)을 출간한 베자(Beza)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 “누구든지 오늘날 프랑스가 모국어로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골짜기의 왈도파 덕분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왈도파를 가장 특징짓는 것은 신성한 책(성경)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다. 성경에 대한 왈도파의 사랑은 그들로 하여금 성경을 플라밍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다른 사람들과 그 보물을 함께 나누도록 했다. 헤어조그(Herzog)는 왈도파 만큼 성경 배포를 위하여 열심이었던 분파를 찾지 못한다고 말했다........왈도파는 성경을 기초로 그 위에 실제적으로 성경의 진리를 세웠다. 한 로마 카톨릭의 종교재판관은 왈도파에 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왈도파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주요한 부분을 암기할 수 있다. 그들은 성인(聖人)들의 교령(敎令)과 어록과 해설을 경멸하고 오직 성경 본문만을 고수한다.......그들은 어떠한 교회의 법령이나 규례와 상관 없이,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교리면 구원에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교회의 전통은 바리새인의 전통에 불과하며, 인간의 전통을 준수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아미티지, 침례교도의 역사, I, p. 308). 왈도파가 신약성경의 단순한 믿음을 왜곡시킨 교권(敎權)에 의해 미움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성경이 비추는 빛은 로마 카톨릭의 이단성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로마 카톨릭이 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쏟아 부은 박해는 그들이 가진 성경뿐 아니라 그들을 멸절시킬 목적으로 가해졌다. “몽포를 시몽의 십자군이 너무나 가혹하게 그들을 멸절시켰기 때문에 스위스 역사가 Sismond는 ‘시몽은 사람 뿐 아니라 문학도 멸절시켰다’라고 말한다.” (아미티지, [침례교도의 역사], I, p. 310).

로마 카톨릭이 그들의 적에게 가한 시도가 너무나 철저했기 때문에 하늘의 장서들을 숙독하기 전에는 먼 옛 적에 하나님을 경외한 이들 왈도파의 역사를 상세히 알지 못할 것이다. 역사가 토마스 아미티지(Thomas Armitage)는 교황 인노센트 3세가 성경을 사랑한 왈도파에 대하여 일으킨 끔찍한 박해를 볼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역사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얼어 죽었고, 다른 이들은 높은 벼랑에서 내던져져서 산산조각이 났다. 동굴 안으로 쫓겨 들어간 어떤 이들은 로마 카톨릭 병사들이 동굴 입구를 막아버림으로 질식해 죽었다. 어떤 이들은 냉혹하게 목 매달리고, 살이 찢겨져 창자가 드러났으며, 뾰족한 것으로 몸이 꿰뚫리고, 익사당하고, 죽음이 그들을 해방시킬 때까지 사지를 갈기갈기 찢기는 고문을 당하였다. 어떤 이들은 창에 찔리고, 개들에게 물어 뜯겼으며, 불태워지거나 머리를 거꾸로 하여 십자가에 달렸다. 폭스(Fox)는 계곡 위로 약 2000 피트 높이에 우뚝 솟은 험한 바위 안으로 들어간 Castelluzzo 동굴에 도피해 있던 400 여명의 어머니들이 아기들을 품은 채 질식해 죽은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이 온순한 피가 흘려지는 동안 내내 인노센트 3세로 알려진 정결한 미인은 낙원의 과즙처럼 그 피를 음미했다. 인노센트 3세는 왈도파와 다른 살해된 그리스도의 양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삼손의 여우와 같다. 그들은 별개의 다른 무리로 보이지만, 그들의 꼬리는 함께 묶여 있다.”라고 했다. 피에 굶주린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은 그들에게 ‘Domoni Canes’, 곧 ‘주님의 개들’이라는 오명을 씌웠다. (아미티지, [침례교도의 역사], I, pp. 311, 312).

“성경은 좀처럼 번역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의 어느 부분이든지 대중의 언어로 번역되기만 하면 빛 가운데서 기뻐하는 백성을 보게 된다. 우리는 두드러진 예를 프랑스 모젤의 메츠(Metz)에서 볼 수 있다. 몇몇 ‘리용의 가난한 이들’ 또는 왈도파가 프랑스어로 된 성경기록들을 그곳으로 가져오자, 사람들은 열심히 그 성경기록들을 읽었다. 그들은 성경읽기 모임을 조직했다......사제들이 그 모임을 중단시키려고 애썼으나 회원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모든 층의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들을 읽도록 의도하셨다. 이 책들은 그동안 당신들이 가르쳐 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가르친다. 우리는 이 책들을 포기할 수 없다.’라고 했다.

주교는 인노센트 3세에게 그들에 관해 보고했다.... 인노센트 3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밀하게 모임을 갖거나 설교자처럼 행동하거나 사제들을 조롱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성경의 깊은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사제들은 이 목적을 위하여 교육을 받는다. 사제들의 말을 들으라. 사제들 가운데 가장 무지(無知)한 자라 할지라도 존경하라. 오직 너희만이 옳다는 생각이나, 너희와 함께하지 않는 자를 멸시하는 것을 주의하라.’ 그는 자기의 충고에 주의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 엄하게 위협했다. 그리하여 인노센트 3세는 다음과 같이 로마카톨릭이 가르쳐 온 교리를 선언하였다. ‘성경을 아는 것은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사제가 원하는 방법과 수단으로 너희에게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그 결과 이 성경 읽기 모음을 폐지시키고자 시토 수도회 대수도원장이 메츠에 파견되었다.

진리를 찾는 평신도들은 ‘경건한 단순함’ 가운데서 사제들의 즐거움을 위한 그들의 수많은 오류들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성경 읽기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악한 무리들을 명명하듯이 왈도파로 불렸다. 그들에게 무력이 가해졌다. 그들의 모임은 해산되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번역본들은 불태워졌으며, 그들의 의견은 근절되었다. 메츠의 사제들은 다시 마음을 놓게 되었으며, 계속해서 무지와 나태와 부도덕한 자기본위의 옛 생활로 돌아갔다. 1229년에 툴루즈 공회가 개최될 때까지 오세르(Auxerre)와 프랑스의 여러 도시에서 유사한 경우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평신도는 어떤 언어로 기록되었든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소지하는 것이 금지 되었으며, 심지어 대중에 널리 보급된 시편(Psalter)과 기도서(Breviary)와 ‘복된 마리아의 시간’을 소지하는 것조차도 금지되었다. 피터 왈도가 발행한 로망스어로 기록된 성경에 대해서는 ‘반드시 불태우라’는 특별 선고가 내려졌다. (Blackburn, [교회사], pp. 314, 315)

그리스도의 시대로부터 1660년까지 신약 신앙을 위해 죽은 순교자의 기원을 밝혀주는 훌륭한 17세기의 역사서인 [Martyrs Mirror] 또한 동일하게 기록하기를 메츠에서 박해당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성경을 모국어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그 시대의 로마 카톨릭에 의해 멸시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Martyrs Mirror p. 300). 인노센트 3세의 치하에서 행해진 박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야만적이었다. 종교재판관은 고발당한 사람이 무죄인가 이단의 죄인가를 시험하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뜨거운 철봉으로 행해지는 심문에서는 시뻘겋게 달군 쇠를 고발당한 사람의 손 안으로 넣었다. 고발당한 사람은 이 쇠가 손 안에서 타는 동안 강제로 아홉 걸음을 걸어야 했다. 그리고 사제는 그 손을 천으로 감쌌다. 그리고 3일이 지난 마지막 날에 조사를 해서, 만약 상처가 있으면 고소된 자는 유죄 판결을 받고 처벌을 받거나 순교 당했다. 뜨거운 물로 행해지는 심문도 이와 유사했다. 고발당한 사람은 물이 끓는 솥 안으로 자기 손을 팔꿈치까지 강제로 밀어 넣어야 했다. 차가운 물로 하는 심문에서 고발당한 사람은 벌거벗겨져서 수로나 강으로 던져졌다. 만약 그가 떠오르면 즉시 정죄를 받았고, 만약 그가 가라앉으면 무죄한 자로 간주되었다.

1215년에 교황이 임명한 최고 종교재판관 Marpug 출신의 콘래드는 독일의 스트라스버그에서 80명 이상을 붙잡아서 시뻘겋게 달군 쇠로 심문하고, 정죄한 후, 모두 그 날 불태워 죽였다(Martyrs Mirror, p. 311, 313) 그밖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고문을 당했다. 13세기에 성경은 또한 이탈리아어로도 번역되었다. “Minocchi 교수에 따르면 13세기 이탈리아어 역본은 ”저자를 알 수 없는 다른 많은 옛 역본과 같이 마음과 양심에서 일어난 변화로 자신들 가운데 생긴 종교적인 생각을 확언하는 방법을 요구하던 사람들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대의 이단적인 프로방스, 사보이의 프랑스 역본들과 친밀한 관계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첫 번째 이탈리아어 역본이 그 근원의 중심을 “이탈리아의 가난한 이들”이라 불린 분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믿을 수 있을 것이며, 만약 우리가 이 역본의 문체를 고려한다면 이 역본이 Tuscan Patarenec에 의해 발행되었다고 명백히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이 대중의 일반 언어로 발행되는 곳마다, 그리고 성경이 로마 카톨릭의 전통과 관련이 없다고 선언되는 곳마다 로마 카톨릭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비추는 빛을 끄려고 애썼다. 로마 카톨릭 당국은 성경이 일반인들이 사용하지 않는 언어인 라틴어로 사용될 때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의 분노를 일으킨 것은 성경이 일반어로 번역되는 경우였다. 피터 왈도와 그밖의 왈도파 모임과 연관된 순회하는 복음전도자들의 강력한 영향에 맞서서 교황 인노센트 3세는 두 계열의 수도승을 설립하였다. 그들은 복음전도자를 모방하여 순회하였지만 로마카톨릭의 비성경적인 교의(敎義)를 전했다. 이들 중 한 계열은 아사시의 성(聖) 프란치스코 수사회였다. (Faber, [고대 왈도파의 역사], p. 477)

교황 인노센트 3세의 통치 아래에서 “이단들”을 멸절시키고자 악명 높은 십자군을 일으켰다. (십자군은 항상 회교도로부터 ‘기독교’ 영지를 되찾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또한 이단으로 명명된 분리주의자(separatist)인 성경 신자(Bible Believers)를 대적하여 소집되었다.) 1209년에 십자가를 앞세운 막강한 군대가 이단들을 멸절시키고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 십자군은 필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잔인하였다. 수개월 동안 약 20만 명의 생명이 희생되었고, 이전에 결코 들어본 적이 없는 잔혹한 행위가 자행되었다. 이 모든 행위는 인노센트 3세의 승인을 얻은 것이었다. 두 큰 도시 베지어(Bezier)와 까르까손느(Carcassone)가 잿더미가 되었고, 다른 수천 명이 불타는 집에서 쫓겨나 숲과 산을 떠돌아다니며, 날마다 궁핍 가운데 멸절되어 갔다.” (Orchard, [침례교도의 간략한 역사], p. 211)

세기를 거치며 계속된 왈도파에 대한 박해 왈도파에게 가해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 세기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많은 부분을 포함한 광대한 영역에 걸쳐 존재했다. 이 기간 동안의 박해는 다음 시대의 박해보다 덜 가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박해가 있었다. 1211년 알사스의 스트라스버그에서 80명 이상의 왈도파 남녀가 화형을 당했다. 1214년에 스페인의 모릴락에서 7명이 화형을 당했다. 독일에서는 1231년부터 1233년까지 왈도파에 대한 첫 번째의 일반적인 박해가 있었다. 박해에도 불구하고 왈도파는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1260년에 오스트리아 북부와 남부에서 왈도파의 정규 경배 장소로 불리는 학교가 약 50 여 곳에서 발견되었다. 1315년에 남부 오스트리아의 작은 행정구역 안에는 36개의 마을과 도시에 왈도파가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전 공작령에서 왈도파의 추종자들의 수는 8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었다. 그들 역시 보헤미아, 모라비아, 카린디아, 스티리아(오스트리아 지방)와 시레시아, 브란덴버르그(현대의 프러시아), 포메라니아, 폴란드 등에서 성공적으로 복음 전도 사역을 수행하였다. 1315년에 비엔나 근처 힘버그에서 화형당한 왈도파 감독 뉴마이스터(Neumeister)에 의하면,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는 많은 수의 왈도파가 있었다. 1315년 시레시아의 한 촌락 슈바이드니쯔에서 50명 이상이 화형을 당했는데, 그들 가운데는 많은 수의 여자와 젊은이들이 있었다. 1309년경에 폴라드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했다. 14세기 말 무렵에 헝가리에는 수많은 왈도파가 있었는데 그들은 트란실바니아까지 퍼져 있었다. 삭소니와 메크렘버그에서는 50년 후에도 왈도파가 발견되었다. 약 1390년경에 위에서 언급된 지방과 국가에서 왈도파에 대한 가혹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 박해의 자취에 대한 빈약한 기록으로도 이들 국가에서 왈도파의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다.

남부 보헤미아에서는 전체 부락이 왈도파의 신앙을 추종하였다. 모라비아에서는 그들의 수가 너무 커서 로마카톨릭 성직체계가 상황을 통제하는 것을 거의 포기할 정도였다. 1393년에 브란덴베르그, 포메라니아, 메트렌버그에서 443명 이상의 사람들이 왈도파 ‘이단’으로 체포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부모가 이미 왈도파였던 이들도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왈도파로 고소되었으며, 그들의 주장을 기록한 심문록(審問錄)이 세 권이나 되었다. 1391년에 바바리아의 여러 곳에서 38명의 왈도파가 사형을 당했다. 1416년에 삭소니의 여러 지역에서 300 명이 화형을 당했다. 1446년에 12명이 노르드하우센에서 화형을 당했고 1454년에는 22명이 삭소니의 산게르하우센에서 화형을 당했다. (John Horsch, [유럽의 메노나이트], p. 7.8)


*16세기 신앙개혁 전(前)의 왈도파
그들의 개혁 전 기간은 AD 1000 년 - AD 1600 년에 이른다. (이는 그들의 기원이 AD 1000 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의 참된 역사는 아마도 사도시대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왈도파의 기록된 역사를 언급한다). 6 세기 동안 왈도파는 모든 세속적인 형태를 피하고, 그들의 가족과 젊은이들을 신약의 믿음 안에 세우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들의 목양자를 훈련시키고, 단순한 성경적 생활양식을 고수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선교적 사명 가운데 있었고 유럽 멀리 전 지역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왈도파의 설교자와 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많은 부분을 인용하여 거짓 교사들의 헛된 철학을 패배시키는 능력으로 명성이 나 있었다. 존경할만한 학식 있는 목양자의 발밑에 앉아 있는 젊은이들은 그들의 교과서로 성경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그 신성한 책을 공부하였을 뿐 아니라, 전(全) 복음서와 서신서들을 암기하고, 정확하게 인용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다. 왈도파는 시간의 일부를 그들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나갔을 때 배포할 거룩한 성경이나 성경의 일부를 필사하는데 배려했다. (J. A. Wylie, [왈도파의 역사], 1860. P.14) 이 기간 동안 왈도파는 유아세례를 포함한 사람이 만든 모든 전통을 거부하였다. (비록 왈도파라 불리우는 사람 중에 어떤 이들은 유아세례를 행하였지만 그들은 예외였다) 1531년에 역사가 세바스찬 프랑크(Sebastian Frank)는 왈도파들이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으며, 그들과 재침례교도들 간에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일치가 있었다고 기술했다.

*16세기 교회개혁 후(後) 왈도파
그러나 개혁 후, 왈도파는 영적으로 교리적으로 약해졌다. 사실 그들이 각 세기마다 견디어낸 잔인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혹독한 박해를 비추어 볼 때, 특히 16 세기와 17 세기 초기 동안 대부분의 목양자들이 살해당한 점을 비추어 볼 때, 이는 놀라운 것이 아니다. 어떻든 간에 그들이 약해졌다는 사실은, 18 세기에 "Vaudois의 역사“를 저술한 J. Besse를 포함한 일부 왈도파 목양자들에 의해 인정되었다. 그에 말에 의하면 왈도파는 15세기 중엽에 학생들을 외국의 대학교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왈도파는 자체적으로 젊은이들을 훈련시켰으며, 대학에서 장려했던 세상적인 철학들과 사람이 만든 전통을 거절했었다. 또한 그 때 왈도파가 스위스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의 일부 비성경적인 가르침들을 따르려 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530년에 왈도파 목양자들은 ‘바젤(Basle)’에 있던 윌리암 파렐과 Oekolampad를 포함한 개혁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왈도파 교회의 교리와 실행을 인정할 것인지를 물었다. Oekolampad는 답장에서 자신과 그의 형제들은 로마캐톨릭 교회에서 세례받은 자들은 다시 침례를 주지 않는다고 신랄하게 주(註)를 달았다. 덧붙여, 재침례교도들이 하는 것 같은 그러한 일(재침례)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로마캐톨릭의 세례를 받아들이는 것은 밥티슴 중생(Baptismal Regeneration)을 포함하여 로마캐톨릭 세례를 둘러싼 모든 거짓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한 로마캐톨릭주의를 규례를 집행하는 권위를 가진 참된 신약교회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왈도파는 이 비성경적인 협의를 거부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1532년 왈도파와 개혁자 간에 대표자 회의가 열렸고, 그 당시 많은 왈도파들이 유아 세례를 비롯하여 로마가 채택했거나 또는 뛰어난 재기(才氣)를 가진 몇몇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로부터 온 인간 철학에서 파생된 다른 비성경적 교리들을 따르기로 했다. 그 후 몇십 년 이내에 이탈리아의 왈도파는 개혁 (칼빈주의) 신조와 교회 정치(Church Polity)를 받아들인 프랑스 왈도파를 뒤따랐다. 비록 그들이 계속 왈도파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프랑스 왈도파와 같이 개혁 교회 조직체의 하나가 되었다.

18세기 왈도파 목양자 J. Bresse는 그들 가운데 발생했던 변화에 대하여 큰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회고 했다. 그는 교육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지혜로운 관찰을 하였다. “이 교육(옛 왈도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사람들을 훈련시키는데 사용했던 가르침의 방식)은 우리 시대가 추구하는 방법과 얼마나 다른가! 그 때는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교를 공부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지금 복음의 사역자는 젊음의 한창 때를, 예수님의 학교에서만 공부했었을 경우보다, 더 열심이고 고결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게 하는 학문을 배우는데 보내야만 한다. 자, 그는 4-5 년 동안 언어 공부로 신음한다. 그리고 그는 미분학 공부를 계속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참으로 쓸모없으며, 몇몇 대학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실제로 해로운, 철학을 계속 공부한다. 보라. 10년의 수고와 지출을! 무엇을 위한 것인가? 행복의 학문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학과 지식을 얻기 위해서이다. 십 년 동안 복음 선포에 전념한 젊은이는 그러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들었다 하더라도, 그의 주요 목표로 삼는 대신, 단지 공부에 필요한 부분으로 들었을 것이다. 그 다음은 신학을 배운다. 신학은 단순하지만 근본적이고 철저히 습득한 계시에 관한 지식, 신학의 진리를 확증하는 증거, 무엇보다도 신학이 추천하는 의무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대학에서의 공부의 방법인가? 결코 아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복음이 아니다. 그것은 신성한 글의 여러 구절에 대한 주석가와 종파 우두머리들의 다양한 의견이다. 이것이 종교의 영을 따르는 것인가? 그와 반대로 겉치례의 거짓 지혜와 신학이 그렇게 비난했던 무익한 학문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것이 아니가? 나는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배우고 가르치는 방식을 그리스도교의 진보에 주요 장애물로 간주한다고 거리낌없이 말하는 바다. 복음은 감정이나 판단에 영향을 미치기 위하여 이와 같은 학문의 모든 장비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복음은 그 자체가 만족스러운 효과를 낳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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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성경은 사도들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는가?      윤사무엘 2019/10/01 228
412  동방 정교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윤사무엘 2018/02/28 830
411   수용원문 혹 전통원문 혹 전수성경(Textus Receptus)이란 무엇입니까?      윤사무엘 2017/02/16 1617
410  가정 교회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윤사무엘 2016/09/26 1185
409  신천지 이단성을 알고 싶습니다      윤사무엘 2016/07/05 1439
408  이신론이란 무엇이지요?      윤사무엘 2016/04/13 2617
407  부활절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부산)      윤사무엘 2016/03/24 1392
406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윤사무엘 2016/02/28 1360
405  자기 딸을 죽이고 시신을 11개월 방치한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윤사무엘 2016/02/08 1301
404  신약성경에 나오는 헤롯왕에 대해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윤사무엘 2016/01/07 4716
403  축도는 반드시 목회자만 해야 하나요?      윤사무엘 2015/12/28 1778
402  루시퍼(사탄)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윤사무엘 2015/11/19 2880
401  왜 왕후 와스디는 왕 아하수에로의 요청을 거절했나요?      윤사무엘 2015/11/05 2471
400  성경에 나오는 시간의 개념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윤사무엘 2015/10/30 6697
399  명절 때 조상에게 제사드리는 문제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윤사무엘 2015/09/26 1498
398  메시아닉 유대인에 대한 설명을 해 주세요      윤사무엘 2015/07/29 1676
397  선명회 합창단과 통일교가 연관이 있나요?      윤사무엘 2015/07/29 3161
396  최근 동성애 문제에 대해 교회의 바른 자세 부탁합니다 (목회자)      윤사무엘 2015/07/06 2792
395  성경적인 대화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윤사무엘 2015/04/10 1977
394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피난처이신가요?      윤사무엘 2015/01/28 1843
393  언약궤를 3개월 보관한 오벧에돔은 누구인지요?      윤사무엘 2014/12/20 5768
392  성탄절을 어떻게 지내야 하나요?      윤사무엘 2014/12/10 1860
391  한국신학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중국 신힉셍)      윤사무엘 2014/11/27 2574
390  제사장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윤사무엘 2014/11/03 2536
389  천주교에서 영세 받은 자가 개종시 세례를 받아야 하나요?      윤사무엘 2014/09/26 3167
388  세례성사’ 통한 가톨릭의 구원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윤사무엘 2014/08/19 2215
387  세례, 안수 받고도 변하지 않고 타락하는 일에 대해 (목회자, 뉴저지)      윤사무엘 2014/08/05 2057
386  에녹서(Book of Enoch)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1]    윤사무엘 2014/07/18 9146
385  인자와 진리의 관계를 더 알고 싶습니다      윤사무엘 2014/07/08 3224
384  계대법(수혼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윤사무엘 2014/06/09 3487
383  신약성경에 나오는 아람어와 그 뜻은 무엇인지요? (콜롬비아 목회자)      윤사무엘 2014/05/27 4164
382  그룹과 스랍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중국, 목회자)      윤사무엘 2014/05/22 7191
381  : 예루살렘과 시온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부산, 신학생)      윤사무엘 2014/05/22 6485
380  여수룬이란 무슨 뜻인가요?      윤사무엘 2014/05/15 6066
379  성경에 나오는 기업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카자흐스탄 신학생)      윤사무엘 2014/04/06 6731
378  최근 "노아Noah" 영화가 성경의 내용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구미)      윤사무엘 2014/03/26 3120
377  출애굽 후 가나안 입성시 대제사장은 누구인가요? (알마띠 신학도)      윤사무엘 2014/03/21 2337
376  성경에 나오는 짐승에 대해 알려주세요(서울)      윤사무엘 2014/01/24 3512
375  일요일(주일) 예배, 성경에 있는가?      윤사무엘 2014/01/19 2380
374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일이 가능한가요? (신학생)      윤사무엘 2013/12/27 4247
373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란 뜻이 무엇인가요? (학술원생)      윤사무엘 2013/12/05 3319
372  모세가 소명받을 때 "신을 벗으라"는 의미는? (출 3:5)      윤사무엘 2013/10/06 3537
371  강단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게양하면 예배학적으로 문제가 됩니까?      윤사무엘 2013/08/04 2736
370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날”(day)은 문자적인 24시간을 말합니까?      윤사무엘 2013/06/26 2586
 중세시대 개혁운동을 한 왈도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전도사)      윤사무엘 2013/06/18 4697
368  마태 24:17-19을 설명해 주세요. 아이 밴자들과 젖먹이는 자에게 화?      윤사무엘 2013/06/09 5480
367  복음시대에 율법은 필요없습니까?      윤사무엘 2013/05/26 2690
366  153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윤사무엘 2013/05/18 6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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