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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례성사’ 통한 가톨릭의 구원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이름
  윤사무엘  (Homepage) 작성일 : 2014-08-19 00:08:04  조회 : 2215 

질문: ‘세례성사’ 통한 가톨릭의 구원은 성경에서 벗어난 거짓된 구원의 길
답변:        조남민 목사  namdesktop@gmail.com
         미국 밸리성경교회 담임, 한인성경선교회 대표

가톨릭을 올바로 알려면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잘 연구하고 이 교리서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는지를 알면 된다는 말을 지난번에 했다. 오늘은 이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근거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구원에 대하여 알아본다.

어느 종교든지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할 때 반드시 살펴야할 것은 구원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경건한 삶이나 종교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또한 아무리 자비롭고, 선하고, 양순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산다고 할지라도 바른 구원의 길을 가지 않는다면 큰 심판을 당하게 된다. 이는 예수님의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 16:26) 라는 말씀처럼 결국은 전혀 유익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톨릭을 이해하고자 할 때 구원의 길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지만 가톨릭의 구원에 대한 판단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점이 있다. 쉽다는 의미는, 성경을 성경대로 전후문맥으로 잘 이해하는 사람은 가톨릭의 교리를 판단하기가 쉽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이단이 성경에서 전후 문맥의 의미가 아닌 한 두 구절만을 취해서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 하는데 사용한다. 가톨릭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올바로 알거나 알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들의 교리를 판단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이유는 가톨릭이 많은 부분에서 그들의 교리를 성경 말씀으로 잘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후문맥에 따른 말씀의 의미를 분명히 알지 않고는 가톨릭의 구원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게 된다. 또한 가톨릭의 교리를 보면 성경말씀으로부터 설명을 해가다가 다른 것을 살짝 갖고 들어와 설명함으로 판단이 더 흐려지게 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도 앞에 부분만을 보면 성경과 다를 바가 없어 가톨릭이 옳다고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읽기 시작하면 뒤로 갈수록 끈기를 갖고, 마지막까지 자세히 살펴야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1. 가톨릭의 구원은 마라톤과 같은 여정
사실 가톨릭의 구원은 가톨릭 신자가 죽기까지 마라톤과 같은 여정이다. 이 말을 처음 들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톨릭의 전체적인 구원을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된다. 그래서 전체적인 가톨릭의 구원 교리를 알기 위해서는 다음 4가지에 관해 알 필요가 있다.
① 의롭게 되는 구원에 관해
② 미사 - 성체 성사에 관해
③ 마리아에 관해
④ 성경의 전통의 권위에 관해

이 4가지에 관해서는 앞으로 지면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살펴볼 것이다. 먼저 여기서 보고자 하는 것은 이 중에서 “의롭게 되는 구원”에 관한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가톨릭의 의롭게 되는 구원의 길은 긴 여정이다. 이 가톨릭 구원의 전체적인 여정을 스케치 해보면 다음과 같이 5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① 유아: 유아는 세례성사를 통해 은총을 받고 의롭게 된다.
② 성년: 성년이 가톨릭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입교에 대한 준비 후 세례성사를 통해 은총을 받고 의롭게 된다(성년).
③ 의롭게 됨의 증가와 보존: 세례로 의롭게 된 사람들이 성례 의식들과 선행으로 영혼의 은총을 증가시키고, 은총과 협력하는 것이 영혼의 은총을 보존시킨다.
④ 다시 의롭게 됨: 은총은 죽을 죄로 인하여 잃어버리지만 고해성사를 통해 다시 얻게 된다.
⑤ 운명의 판가름: 은총의 상태에서 죽을 때 영생은 성취된다.
이 전체적인 구원의 과정을 이해하기만 하면 가톨릭의 구원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떤 여정을 통해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 수 있다.

이번에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구원 중에서도 구원의 시작하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위의 다섯 가지 중에 첫 번째(유아)와 두 번째(성년) 부분에 해당한다. 만일 이 구원의 시작이 성경과 다르다면 처음부터 어긋나는 것이고, 그 다음 것은 더 깊이 살펴 볼 필요도 없게 된다.

구원받지 못한다는 문제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심각한 문제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하나님 나라에 가지 못하고 불 못의 형벌을 받으며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이 인생에서 어디 있겠는가?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길이니 우리 인생에서 일생일대에 중요한 일이다. 많은 소망을 갖고 종교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잘못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잠언 14장 12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복음을 받은 베뢰아 사람들이 행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 성경과 비교해 보아야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그리고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고 잘못된 길은 버리고, 올바른 길 - 생명의 길로 가야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가톨릭이 그렇게 커지고 많은 신자들로 번성하게 되었으니 이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 사람이 하는 말과 정 반대다. 들어가는 사람이 많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요 찾는 이가 적은 문은 좁은 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만으로 생각해서 내가 좀 잘못된 길을 가도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나를 잘 봐주시겠지”, “나를 눈감아 주시겠지” 한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심을 모르는 처사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공의로운 재판관보다도 가장 공의로우신 분이심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알리신 구원의 길을 올바로 아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2. 구원에 관한 가톨릭과 개신교의 공통점과 차이점

구원에 관하여 가톨릭의 구원 교리와 개신교의 구원 교리는 공통점이 있고 차이점이 있다. 물론 이들의 문제는 성경으로 판단해야만 한다. 성경에 근거한 공통점이 있다고 해서, 가톨릭의 구원이 개신교에서 말하는 성경에서의 구원과 일치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차이점을 보고 올바로 판단하기까지는 끈기 있게 살펴야 할 것이다.
1) 첫째 - 공통점: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우선 공통점은 가톨릭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점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161]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참고. 가톨릭은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칭한다. 여기서 필자는 가톨릭 문서가 아니면 ‘하나님’으로 칭할 것이다).
“[161]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 구원을 위하여 그분을 보내신 분을 믿는 신앙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고’(히브 11,6), 하느님 자녀의 신분을 얻지 못하며, ‘끝까지 견디지’(마태 10,22; 24,13) 않고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교리서의 말을 보면 가톨릭교회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예수님을 보내신 분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실 이것을 보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개혁교회의 성경적인 구원의 교리와 다른 점이 없다(참고. 필자가 ‘개혁교회’ 혹은 ‘개신교’라고 할 때는 어떤 특정 교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1517년에 시작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개혁후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말한다). 이런 이유로 가톨릭의 교리를 더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사람들이 가톨릭의 교리가 개혁교회 교리와 일치한다고 여기고 있다. 그 결과 루터교가 1999년 10월 31일에 <가톨릭교회와 루터교 세계 연맹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에 이어 가톨릭과 루터교와 감리교가 2006년 7월 23일에 서울 금란교회에서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공동선언문을 만들고 서명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특히 제2바디칸 회의(1962~1965년) 이후, 1967년부터 대화를 시작해서 30여년을 설득하며 타협하여 루터교와 서명했으며, 40년 후인 2006년 7월 23일에는 감리교와 함께 서명한 것이다. 그 동안에 의롭게 되는 칭의론(가톨릭에서는 ‘의화(義化) 교리’라고 부름)의 논쟁은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전통적인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 된다”는 개신교 교리의 신학적 다툼인 것을 지적하고 있다.
공동선언문(감리교 성명서)의 골자에 대해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물이며 이는 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은총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은 인간에게 선행할 힘을 주시고 또 그렇게 하도록 부르신다” 라고 요약 보도하고 있다. (여러 보도들. 예를 들면, http://blog.daum.net/soyunkim/7534825 참조). 이 정도만 말하면 문제를 찾기가 힘들고 판단도 흐려진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문제점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구원이 선물인데 이는 선행은 아니고, 은총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고 둘로 나누었다. 이렇게 둘로 나눈 저의가 무엇인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이라고 하지 않고 “은총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오는 것”이라고 했는가? 그 은총(참고. 가톨릭은 ‘은혜’를 ‘은총’으로 말한다)이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말하는 은혜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또한 은총에 대해,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은혜의 은사를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말이 덧붙여지면 이것은 문제가 된다. 공동선언문 전문 중 2항 16에는 “……성령께서는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역사하시면서……”라는 말이 나온다. 이 전문 중에 “성사”라는 말이 나오는 부분이다. ‘성사’라고 한다면 사람의 전통이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개신교에서는 소위 ‘성례전’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공통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가톨릭의 교리를 올바로 알면, 바로 이 부분에 가톨릭의 교리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글을 다시 정리해 이를 연결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구원은 선행을 통해서가 아니고 은총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은총은……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총이요……성령께서는 말씀과 성사(성례전)를 통하여 역사 하신다’는 말이다. 성사를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성사를 통해 은총을 주신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가톨릭이나 개혁교회의 공통점이 둘 다 똑같이 ‘성사’ 혹은 ‘성례’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차이점은 무엇인가? 개혁교회가 말하는 ‘성례’와 가톨릭이 말하는 ‘성례’의 종류가 다른 것이 첫 번째 차이점이고, 그 의미가 다른 것이 두 번째 차이점이다. 성사(성례)에 대해 개혁교회에서는 세례와 성찬이 있고, 가톨릭에서는 세례를 포함해 7성사(세례, 견진, 성체, 혼배, 성품, 고해, 병자(종부))가 있다.
그러나 이 공동선언문의 전문처럼 구체적인 성사(성례)를 말하지 않을 때, 그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살피지 않는다면 그냥 넘어 갈 수 있다. 또한 그 성사의 효과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그냥 넘어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가톨릭이나 개혁교회나 이 글을 문제 삼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공동선언문에 서명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500년 전에 피를 흘리며 갈라졌던 것을 그 근본 교리의 변화 없이 겉모습만을 보면서 서명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기서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구원의 시작점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구원에 관계된 성사 중에 세례성사가 그것인데, 이는 가톨릭에서 소위 ‘입문성사’라고 부르는 성사이다. 이런 성사가 구원에서 “예수님만을 믿어 구원을 얻는다”에 + “알파”, 즉 예수님도 믿고 이것도 해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성경에 근거해 잘못된 거짓 가르침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이를 확실히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2) 둘째 - 차이점: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행하는 세례성사 혹은 세례성례가 다르다.
먼저 개신교 목회자나 평신도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여기서 뱁티즘은 물로 뱁티즘을 주는 것을 말한다(참고. 뱁티즘: 일반적으로 세례 혹은 침례로 번역. 원어가 ‘뱁티즈마’로서 영어는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자주 세례나 침례로 표현하기보다 뱁티즘으로 표현할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은 이를 세례성사라고 부르니 가톨릭에 관한 글은 일반적으로 ‘세례’라고 함을 인지하기 바란다).

질문:
1)당신은 구원을 위해 물세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2)당신은 물세례가 모든 죄를 사해준다고 생각합니까?
3)당신은 물세례가 다시 태어나게 하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된다고 생각합니까?
                 
만일 개신교 성도로서 이 질문 중에 “예”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개신교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구원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이는 “예수님을 믿는 것 + 알파”이므로 사도가 갈라디아서에 말하는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 외에 (그것이 어떤 것이든) 조금이라도 덧붙인 사람에 대해, 감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하게 꾸짖었고 그들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서 구원을 위해 예수님 외에 덧붙임이 필요하다고 말한 사람들이었다. 즉, 예수님을 믿고 할례 같은 이스라엘의 옛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사도는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9).
이렇게 갈라디아의 상황과 함께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 외에 덧붙이는 것을 크게 저주한 후, 사도는 다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에 대해 명확하게 못을 박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사도는 사람이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임을 다시 천명한 것이다. 이 외에 다른 행위 ¬ 그것을 ‘선행’이라고 부르든 무엇이라 부르든, ‘할례’나 ‘세례’나 ‘성사’라는 의식이라 부르든 ¬ 어떤 행위를 덧붙이는 것은 구원에 들어 갈 수 없는 것이다(“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9). 이로 인해 1517년 개혁이 일어났고, 수많은 피를 흘린 것이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올바로 알면 이 구원의 말씀을 위해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우리가 죽고 심판을 받은 후 영원히 불 못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을 받고 사느냐? 아니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사람들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는 말씀을 꿋꿋하게 전하는 것이다.
마치 사도바울이 그렇게 전하면서 많은 핍박을 받고 순교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사도 바울이 그 당시 갈라디아 지방에서 ‘예수님 + 할례나 절기 지키는 것’이 괜찮고 구원에 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면 유대인들로부터의 핍박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사도는 매번 새로운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때마다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나 큰 핍박을 받았다. 그중에 여기 이 말씀도 이것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정면충돌을 하게 되니 핍박을 받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① 가톨릭은 세례성사를 어떤 의미로 행하고 있는가?
가톨릭 교리에서는 유아나 성년이나 모두 ‘세례성사’를 행하지 않으면 의롭게 되는 구원에 들어갈 수 없다. 바꿔 말하면, 가톨릭에서 의롭게 되는 구원을 얻으려면 세례성사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세례를 받기위해서는 유아와 성년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길을 밟아야한다. 유아는 곧 세례성사에 들어갈 수 있지만 성년은 입교 준비를 마친 후에라야 세례성사를 받을 수 있다.

성년이 유아와 다른 절차를 밟아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은 후에 보기로 하자.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성년이든지 유아든지 가톨릭은 세례성사를 해야 의롭게 된다는 사실이다.
가톨릭이 ‘왜 세례성사를 해야 의롭게 되느냐?’에 관해서는 여러 이론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성경적이 아닌 설명이 가미된다. 이것도 기회가 있으면 다음에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이 세례성사를 어떻게 말하고 있고, 성경에서는 세례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의하면 유아든 성년이든 반드시 세례성사를 행해야 의롭게 될 수 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는 세례성사에 관해 1213항부터 1284항까지 장장 71항에 걸쳐 말하고 있다. 이 교리서의 기록이 항상 그런 것처럼 처음에는 성경과 다른 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 점점 더 성경에서 벗어나는 기록을 우리는 읽게 된다. 여기 특히 1262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례의 두가지 중요한 효과는 죄의 정화와 성령안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이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세례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받는 순종의 의식이 아니다. 가톨릭의 세례성사는 두 가지의 중요한 효과를 말한다. “죄의 정화”와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특히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가 용서를 받는다고 가르친다. 처음 듣는 사람은 의아해 할지 모르지만 이는 하루 이틀의 가르침이 아니다. 오래된 가르침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주석에 의하면 이에 관계된 문헌이 피렌체공의회로 되어 있다. 피렌체공의회는 1438년~1443년 사이의 회의이다. 하지만 세례에서 죄가 용서된다는 교리는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5세기부터 시작된 것이다. 어거스틴은 많은 부분을 성경적으로 잘 설명해,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의 철학적 사고의 영향으로 이 부분은 성경적으로 설명하지 못했음이 안타깝다. 후세에 그것을 바로 잡았어야 했는데 가톨릭은 이것을 바로잡기보다 오히려 이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다(어거스틴은 로마 가톨릭의 35명의 교회박사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박사다. 어거스틴의 세례로 인한 죄 사함에 관한 글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http://www.calledtocommunion.com/2009/07/augustines-use-of-infusion-for-justification/).
또한, 세례로 인한 ‘죄의 정화’를 자세히 말한 1263항은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가르침이다.
"세례를 통하여 모든 조, 곧 원죄와 본죄, 모든 죄벌까지도 용서 받는다. 세례로 새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을 아무런 죄도 남아 있지 않다. 곧 아담의 죄도, 본죄도 죄의 가장 중대한 결과인 하느님과의 단절로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은 세례를 통해 모든 죄가 용서받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을 죄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세례성사를 행하지 않고는 죄를 용서받을 길도 없고 하나님 나라에 갈 길도 없는 것이다(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신 것과 거리가 멀다). 그런데 좀 더 나아가 1265항은 더 강한 말을 하고 있다.

"세례는 모든 죄를 정화하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신자를 "새 사람"이 되게 하며 "하느님의 본성을 나누어 받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의 지체, 그리스도와 공동상속자, 성령의 성전이 되게 하고"        

가톨릭의 세례는 매직과 같다. 죄인이 세례를 받음으로 모든 죄가 용서되어서 하나님과 더 이상 단절될 것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새사람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고, 성령의 전이 되게 한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벗어난 거짓 가르침이다.

② 뱁티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여기서 성경에서 세례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후, 제자가 된 후에 뱁티즘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성경말씀을 찾아본다. 첫 번째 성경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신 후 하늘로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대사명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태복음 28:19).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우선 세례를 주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다. 그리고 특별한 것은 먼저 제자로 삼은 후에 뱁티즘을 주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뱁티즘을 주는 것이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는 여기 말씀하신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며 뱁티즘을 받아야함이 마땅하다.
두 번째 성경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님을 보내시고, 그 후에 베드로 사도가 설교하는 말씀이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사도행전 2:38).
이 말씀은 여러 가지로 이해가 가능한 말씀이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을 얻고 성령을 받을 것이다, 혹은 회개하면 죄 사함을 얻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베드로 사도가 설교한 순서대로 하면 전자가 맞는다. 하지만 이것을 올바로 이해할만한 다른 말씀이 필요하다.
이 말씀으로 인해 죄 사함을 얻으려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함으로 이단으로 정죄된 그룹도 있다. 아무튼 이 말씀은 모호한 부분이 있다. 사실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1262항의 참고 자료중의 하나도 바로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이렇게 모호한 말씀을 사도행전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하게 해결해 준다. 사도행전 2장이 주후 3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고, 회개와 뱁티즘과 죄 사함을 혼합한 단 하나의 설교였다면 그 후 몇 년이 지난 후 다음과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이들의 관계를 이해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점진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신 말씀들이 있다.
세 번째 성경말씀, 이제 예루살렘에 스데반으로 인해 핍박이 있고 난 후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며 빌립이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는 말씀이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사도행전 8:12).
이는 분명히 이 사람들이 믿고 난 후 뱁티즘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믿기 전에 뱁티즘을 받아 죄 사함이나 새롭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말씀이다.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믿고 난 후 즉, 제자가 된 후에 뱁티즘을 받은 것이다. 네 번째 성경말씀은, 이제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10여년이 지난 후의 말씀이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4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사도행전 10:34~48).
이 말씀은 2장 38절의 말씀의 이해를 올바로 하게 하는 말씀이다. 성경이 계속해서 완성이 되면서 모호한 말씀을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말씀이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뱁티즘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2000년 전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에게 성령님이 임하심을 말씀하신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고 제자가 된 사람에게 주님이 명령하신대로 뱁티즘을 주는 장면이 이 말씀을 통해 잘 그려져 있다.
요점은, 뱁티즘을 받으므로 죄 사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다는 가톨릭의 가르침과는 정 반대로, 죄 사함을 받고 새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사람이 뱁티즘을 받는 것이다. 이로써 사도행전 2:38의 모호한 말씀을 따라, 뱁티즘을 받는 자가 죄 사함을 받는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다섯째 성경말씀. 이번에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보고자 한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약 25년 정도가 지난 후의 말씀이다.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린도전서 1:14~17).
여기 이 말씀에서 사도는 자신이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에 감사하노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가톨릭의 가르침에서 세례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죽을 때라도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면 병상에서라도 세례를 주며 종부성사를 한다.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이는 “죄 사함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관한 것이요, “새로운 사람이 되느냐 못 되느냐”에 관한 것이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느냐 못되느냐”에 관한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느냐 안 되느냐”에 관한 것이고,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되느냐 안 되느냐”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고린도전서에서 사도의 말은 이런 가톨릭의 가르침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다. 오히려 가톨릭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사도가 세례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에게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행위가 어떤 행위든 즉, 할례라는 의식 행위든지 세례라는 의식 행위든지 믿음+행위는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갈라디아서).

③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가톨릭의 세례 성사를 통한 죄 사함의 가르침/의롭게 되는 가르침(구원의 가르침)은 성경의 가르침과 상반되고 구원에서 절대적으로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가톨릭의 구원의 가르침은 성경적이 아닌 가르침이기 때문에 하늘나라로 가는 가르침이 아니다. 가톨릭의 가르침으로는 내가 누구 누구에게 세례성사를 베풀었다고 자랑할 만하다. 하지만 이는 사도 바울과 정반대되는 말이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늘나라로 가는 가르침이 아니다. 하늘나라가 아니면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는 다음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죄 용서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세례성사를 떠올리게 하는 거짓 가르침보다 만왕의 왕이시오 만유의 주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올바른 가르침을 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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