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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성경에 나오는 헤롯왕에 대해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름
  윤사무엘  (Homepage) 작성일 : 2016-01-07 11:31:59  조회 : 4715 

질문: 신약성경에 나오는 헤롯왕에 대해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신학생)
답변: 윤사무엘 목사

헤롯(Herod the Great, BC 37-4 재위)은 헤롯 안티파터 2세(B.C. 55-43년 재위)의 둘째 아들로, 로마 속국으로 있었던 고대 유대 왕국의 왕, 친로마 정책을 펴 유대 왕국을 발전시켰다.

성경에는 헤롯대왕이 별세하고 나서 유대지방의 분봉왕(Tetrarch)이 된 아켈라오(장남), 안디바(혹 헤롯안티파스, 차남으로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빼앗음, 세례요한을 순교시킴), 빌립(헤로디아와 결혼, 4남), 아그립바1세(아켈라오의 장남, 딸이 헤로디아), 아그립바2세(헤롯대왕의 증손자)로 성경에는 총 6명의 헤롯이 등장한다.

헤롯대왕은 10명의 아내로부터 15명의 자녀를 낳았다. 헤롯이란 '영웅의 아들'이라는 뜻이며, BC 74년 유대 남쪽 네겝사막에 위치한 이두메아(Idumaea, 신광야)에서 태어났다. 헤롯의 아버지는 안티파테르(이두매인(Idumean, 에서의 후손)이며, 어머니는 키프로스(나베테아 왕국의 페트라의 공주)로 이들 사이에 태어난 두 번째 아들이 바로 헤롯 대왕이다. 그래서 헤롯은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이었다.

그의 아버지 안티파테르는 폼헤이우스나 케사르(율리우스 가이사르=시저)와 같은 로마의 유력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두 아들도 높은 지위에 오르게 했다. 큰 아들 파사엘은 예루살렘의 총독이 되었고 당시 16세 밖에 되지 않았던 헤롯은 유대와 사마리아의 북쪽에 위치한 비옥한 땅이며 나중에 예수님의 사역 중심지로 삼은 갈릴리 지방의 총독이 되었다. BC 43년 아버지 안티파트로스가 의문의 독살을 당하자 헤롯은 암살자를 처형하고 돌아와 명목상 유대의 왕가였던 하스몬 왕조의 공주 마리암의 청혼을 받았다. 당시 마리암은 10대 였으나 헤롯은 첫 번째 부인인 도리스와 3살난 아들 안티파트로스를 버리고 마리암과 결혼하여 전통적인 유대교 제사장가문과 결합하였다.

또 40년 파르티아 왕국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로마의 속주들을 침략한다. 파르티아는 아리스토불루스 2세의 아들 안티고누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한다. 파르티아 침략으로 요한 힐카누스 2세는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안티파테르의 아들인 바사엘은 사망하게 되고, 헤롯은 가족과 함께 마사다로 피신했다가 혼자 로마로 건너가 원조를 요청했다. 거기서 안토니우스와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유대인의 왕”이란 칭호BC 40년)를 받아 유대로 돌아와 3년간 안티고노스와 싸워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여 34년간 유대인의 왕으로 다스렸다. 대왕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마사다에 숨어있던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을 자유롭게 해준 다음 예루살렘은 몇주 동안 포위한 끝에 성벽을 타고 올라가 도시를 점령했다. 헤롯은 로마 병사와 그에게 한결 같은 충성심을 보인 유대인들에게 명해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을 대부분 학살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하게 장악했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Augustus)사이의 내전 당시 헤롯은 안토니우스를 지원했으나 나중에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자 로도스 섬에 있던 옥타비아누스를 만나 충성을 맹세하고 “유대인의 왕” 지위를 다시 한번 검증을 받았다. 헤롯은 로마의 정세가 변해도 새로운 권력자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 만큼 민첩하고 권력에 대한 애착이 강한 인물이었다.

로마황제를 향한 그의 충성심은 그가 도시를 건설하고 황제의 이름으로 명명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헤롯은 로마의 상류층과 특별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아우구스투스의 사위인 마르크스 아그립바와는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를 계속했으며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적절히 이용했다. 그리하여 내국에 있는 유대인과의 관계는 좋지 아니했으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는 헤롯의 인기가 좋았다. 아나톨리아(오늘날 터키)와 크레네에 사는 유대인들은 헤롯왕이 유대인을 보호하는 실력자로 칭송을 받았다. 그리스와 로마인들도 헤롯을 좋게 평가했다. 헤롯의 통치 기간 중 헬라 문화의 물결은 쉽게 유대인 세계로 유입되었다.

BC 42년 아버지 안티파테르가 의문의 독살로 암살당하자 헤롯은 암살자를 처형하고 돌아와 첫 번째 부인인 도리스(Doris)와 아들을 버리고 당시 유대 왕가였던 하스몬(Hasmonean) 왕조의 공주 마리암과 결혼하여 유대인 제사장 가문(사두개파)과 결합하였다.

헤롯은 남아있던 하스몬 후손들을 하나씩 제거했다. 하스몬 왕조의 마지막 왕녀이자 부인인 마리암을 누명씌워 살해했다. 그리고 마리암과 사이에 태어난 아들 아리스토불루스도 헤롯에 의해 살해당했다. 헤롯이 죽기 전 며칠 전에도 첫부인 도리스와 그와 사이에 태어난 아들 안티파티를 살해했다.

그러니 헤롯이 아기 예수 탄생 소식을 동방 박사들로부터 전해 듣고 박사들이 자기에게 들리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간 후 베들레헴 일대 2살 이하의 유아들을 죽여버리는 일은 그의 권력욕의 일면을 잘 볼수 있다.

대제사장직은 하스몬 가문에서 맡아 왔으나 헤롯은 고의적으로 바벨론 출신의 아나넬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했다.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 AD 37-100)에 따르면 헤롯은 마리암을 깊이 사랑하는 한편 또 질투에 눈이 멀어 그녀를 간통죄로 처형했는데, 여기에 마리아의 동생인 살로메와 친어머니인 알렉산드라가 개입되었다고 한다. 마리암의 처형 이후 알렉산드라는 헤롯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여왕으로 선포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헤롯은 그녀를 재판없이 죽였다.

평소 헤롯은 자신이 유대인이 미워하는 에서의 후손인 이두메아 출생이어서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스룹바벨 총독시대때 재건된 제2 예루살렘 성전을 화려하게 증축했지만 도중에 죽자 그의 아들이 이를 완성했다(AD. 55년). 그러나 이 헤롯성전은 완성된 후 15년만에 로마군에 의해 돌하나도 돌 위에 있지 않고 완전 폐허되었다. 이때 무너진 성전이 현재까지 없는 상태이다.
또한 헤롯은 각 지역에 거대한 로마식 도시와 별장(왕궁), 요새를 건축하여 고고학에서는 헤롯 덕분으로 많은 구조물(예, 헤로디움, 마사다 요새, 사마리아, 여리고, 통곡의 벽 등)을 남겼다. 그가 건설한 도시로 유명한 것은 가이사라(나중에 유대가 로마의 직할령이 된 후 지역에 수도가 되어 빌라도 총독 관저가 있었다), 마르티아와 그 항구, 옛 사마리아 성 유적 위에 세워진 아우구스투스에게 봉헌된 세바스테, 찌포리(갈릴리 지역), 다마스쿠스 안티오크, 로도스이다. 로마식 극장, 거리, 시장, 광장, 원형경기장, 목욕탕 등 유대 전통과 맞지 않는 헬라 문화를 보급하는데 힘썼다.

올림픽 경기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그 주관자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유대지역에서는 헤롯에 대한 반감을 가진 유대인이 많았는데 메시야가 도래하면 헤롯의 통치가 끝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리새파로부터 미움을 많이 받았다,
또한 당시 배를 건조하는데 꼭 필요했던 아스팔트를 사해(염해 Salt Sea)에서 추출하여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배분하여 독점하였고, 아우구스투스로부터 키프로스의 구리 광산을 임대하여 돌을 벌어들였다.

농업을 장려하여 유대의 경제적 기반 확충에 공헌했다. BC 25년에 유대 지방에 대가뭄으로 기근이 나자 이집트로부터 곡물을 수입하고 세금을 감면해 주기도 했다. 또한 로마 군인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는 유대교 우대 정책과 예루살렘에 수도시설 개선사업을 하여 삶의 질을 높이기도 했다.

헤롯의 가정사는 피로 얼룩졌다. 그는 여섯 번 결혼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부인 마리암을 죽였고, 그녀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과 장모까지도 죽였다. 그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큰 고통 속에서 살았으며 정서적으로 불안해 했다. 후계자 문제를 두고 수차례 유언을 번복하기도 하고 결국, 왕위를 물려주던 맏아들 안티파테르를 재판에 올려서 아우구스투스의 허락하에 처형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BC 4년 봄에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 유언을 통해 자시 영토를 3명의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헤롯 아켈라오(아르케랄오스)에게는 자신의 전 영토를 주었고, 헤롯 안티파스(안디바)에게는 갈릴리 지역과 베레아 지역을, 헤롯 빌립 1세에게는 골란지역과 베타니아, 트라코니티스를 각각 나누어 주었다. 그리나 마지막 유언인 분봉왕 분할은 아우구스투스이 허락을 얻지 못했고 결국 세 아들 모두 왕의 칭호를 받지 못했다. 대신 분봉왕(Tetrarch)이란 칭호를 받았다.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B.C.37-3)의 자녀들과 손자들:
(1) 아켈라오(Archelaus)
아켈라오는 헤롯대왕과 말다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헤롯대왕이 그를 첫 번째 상속자로 지명함으로써 아켈라오는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리게 되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애굽으로 피난해 있다가 헤롯이 죽었다는 천사의 계시를 받고 유대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그 때 유대 땅은 아켈라오가 다스리고 있었다. (마2:22). 아켈라오가 임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이 유대로 가기를 무서워 할 때 다시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랄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아켈라오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유대인들은 아켈라오를 향한 적개심을 늦추지 않았다. 결국 유대인들의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유월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유월절에 정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되었다. A.D. 4년경 아켈라오는 그의 형제(동생) 안티파스의 도전을 받았는데, 안티파스(안디바)는 헤롯대왕의 유언장을 근거로 자기의 왕권을 주장하였고 아켈라오는 수정된 유언장을 가지고 자신의 왕권을 주장하였다. 아켈라오의 어머니 말다케는 아켈라오와 로마로 동행을 했는데, 말다케는 오히려 안티파스의 편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죽고 말았다.
한편 유대로부터 또 다른 대표단이 로마에 도착하여 헤롯 가문의 누구에게도 왕권을 수여하지 말고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율법에 의하여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렇게 되자 헤롯 가문은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하였고, 아켈라오 동생인 헤롯 빌립이 아켈라오를 지지하기 위하여 로마에 도착했다. 이 모든 소송 사건을 다 들어 본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유대 땅의 절반을 아켈라오에게 주었고, 남은 절반을 가지고 헤롯 안티파스와 빌립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셋 다 왕(King)의 칭호를 받지 못하고 분봉왕(Tetrarch)이 라는 명분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결국 아켈라오는 로마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이두메까지 다스리는 분봉왕으로 인정을 받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아켈라오에게 통치를 장하면 장차 왕의 칭호를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아켈라오는 글라피라(Glaphira)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와 결혼하려고 자기의 아내 마리암네를 버렸는데 이일이 유대인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었다. 아켈라오를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아켈라오를 고발하기 위하여 로마로 대표단을 파송하였고 마침내 로마에 알려지게 되자 A.D.6년에 아켈라오는 갈리아 지방의 비엔나로 추방되고, 총독 코포니우스(Coponius)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이두메를 다스리게 되었다.

2)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 A.D.4-39) = 안디바
헤롯대왕과 그의 사마리아인 아내 말다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 지방의 분봉왕이었다. 그의 이름은 신약에서 헤롯왕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왕위를 하사한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갈릴리에 티베리아스(디베료)를 건설하였다. 지금도 티베리아스는 갈릴리의 최대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나바테아의 공주(아레타스의 4세의 딸)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의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유혹하여 아내로 삼았다. 로마까지 가서 자신의 조카이자 제수이기도 한 헤로디아를 유혹하여 결국 데리고 온 것이나 그러한 괴물을 따라 나선 헤로디아의 불륜은 인류 역사에 전무후무한 것이다. 이러한 헤롯에게 복수하는 헤로디아의 방법이 곧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게 한 것이다. 헤롯의 눈에는 세례 요한의 후계자처럼 나타난 예수님의 행적에 대하여 적지 않은 두려움이 있었던 같다.  이러한 처사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부도덕한 헤롯을 비난하였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공개적으로 질책하였다. 동생의 아내(헤로디아)를 취하여 즐기고 또 그녀의 딸(살로매)을 향하여 음욕을 불태우는 한편, 요한의 용감한 예언을 인하여 두려워하는 인물이었다. 세례 요한은 헤로디아를 여우라고 하고 안디바를 책망했다. 그래서 그는 안디바의 손에 의해 순교했다. (막6: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가로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느니라 하고”; 마 14:1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마 14:9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3) 빌립 아리스토불루스
헤롯 대왕과 대제사장 시몬의 딸 마리암메 1세와의 아들. 헤로디아를 낳음, 공직에 있지는 않았다.

4) 헤롯 빌립1- 헤로디아와 결혼, 살로매를 낳음

5) 헤롯 빌립2(Herod Philip A.D. 4-34)
빌립은 헤롯 대왕과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서 아두메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다스리던 사람이다. 헤롯 대왕과 그의 다섯째 처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영주가 됨(눅3:1) 살로매와 결혼

6) 헤롯 아그립바(Herod Agrippa B.C. 10-A.D. 44)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이며 헤롯 대왕의 손자이다. 그리고 헤롯 안티파스의 조카이기도 하다. 헤로디아와 남매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 된 후 로마로 보내졌다. 그리하여 그는 황실에서 양육을 받으면서 티베리우스 황제의 아들 드루수스(Drusus)와 친구가 되었다. 청년으로 자라면서 그는 방탕한 사람이 되었다. 그가 팔레스틴으로 갔지만 거기서 안티파스의 미움을 사서 결국은 다시 로마로 갔다. 곧이어 티베리우스가 죽고 갈리굴라가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황제에 대하여 불손한 말을 함부로 하다가 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나 곧 풀려나와 팔레스틴의 빌립이 다스리는 영토의 왕으로 임명되었다. 이 사람은 사도 야고보를 처형하였고 (행12:1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베드로를 옥에 가두기도 했으며(행12: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그는 유대인의 비위를 맞추는데는 아주 명수였다. 그리하여 그런대로 정치적인 곡예를 잘 하다가 백성들이 그를 신으로 열렬히 환호하는 소리가 날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치게 되었는데, 그래도 그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있다가 결국은 충이 먹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행 12: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7) 헤롯 아그립바 2세(Herod Agrippa Ⅱ, A.D.27-100)
아그립바 1세의 아들로서 로마에서 자라났다.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는 불과 17세였다. 그래서 그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해서 유대의 관할 구역은 총독들의 관할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가 A.D.50년경에 팔레스틴 북부 칼키스(Chalcis=지금의 레바논 지역) 지방의 왕으로 임명되었다. 그후 53년에는 클라우디어스가 빌립이 다스리던 땅과 교환하여 주었고, 클라우디어스가 죽고 네로가 황제가 된 후에는 티베리아스를 포함한 상당한 영토를 더 붙여 주어 상당한 영토를 다스리게 되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별로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누나를 범하여 근친상간을 하였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유대인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가 베스도와 함께 바울의 증언을 듣가다 베스도가 바울을 향하여 미쳤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행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일러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그 후에 예루살렘에 있던 하스모니아 왕궁을 확장하였다. 또 가이사랴에서 건축 사업을 추진하였다. 66년 제 1차 유대인 반란이 일어났을 때 이를 진압하려는 베스파시아누스를 지지하였고,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 그는 로마로 가서 행정관으로 임명되었으며, 그는 거기서 장수하다가 약 100년 경에 죽었다. 그는 헤롯 왕가의 마지막 통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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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성경에 나오는 짐승에 대해 알려주세요(서울)      윤사무엘 2014/01/24 3511
375  일요일(주일) 예배, 성경에 있는가?      윤사무엘 2014/01/19 2380
374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일이 가능한가요? (신학생)      윤사무엘 2013/12/27 4247
373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란 뜻이 무엇인가요? (학술원생)      윤사무엘 2013/12/05 3319
372  모세가 소명받을 때 "신을 벗으라"는 의미는? (출 3:5)      윤사무엘 2013/10/06 3537
371  강단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게양하면 예배학적으로 문제가 됩니까?      윤사무엘 2013/08/04 2736
370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날”(day)은 문자적인 24시간을 말합니까?      윤사무엘 2013/06/26 2586
369  중세시대 개혁운동을 한 왈도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전도사)      윤사무엘 2013/06/18 4697
368  마태 24:17-19을 설명해 주세요. 아이 밴자들과 젖먹이는 자에게 화?      윤사무엘 2013/06/09 5480
367  복음시대에 율법은 필요없습니까?      윤사무엘 2013/05/26 2690
366  153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윤사무엘 2013/05/18 6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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